“우리 아이는 책을 소리 내어 잘 읽어요. 그런데 다 읽고 나서 무슨 내용이었냐고 물으면 대답을 못 해요.”
초등 저학년 학부모에게 자주 듣는 말입니다. 글자를 틀리지 않고 읽으니 읽기는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교과서나 문제집 앞에서는 엉뚱한 답을 씁니다. 부모는 당황하고, 아이는 “읽었는데 왜 모르냐”는 말에 주눅이 듭니다.
이 글의 핵심
- 한글을 뗀 것은 글자를 소리로 바꾸는 법을 배운 것이지, 글의 뜻을 읽는 법을 배운 것이 아닙니다.
- 읽고도 이해 못 하는 아이는 머리가 나쁜 게 아니라 두 번째 단계를 배운 적이 없는 것입니다.
- 동화책 한 권으로 집에서 확인할 수 있고, 하루 10분이면 연습을 시작할 수 있습니다.
글자 읽기와 글 읽기는 다른 일입니다
읽기는 하나의 능력처럼 보이지만, 사실 두 가지 일이 겹쳐 있습니다.
① 글자 읽기 (해독)
“ㄱ”과 “ㅏ”를 합쳐 “가”라고 소리 내는 일입니다. 흔히 “한글을 뗐다”고 할 때 배운 것이 바로 이것입니다.
② 글 읽기 (이해)
“가”가 어디로, 왜 가는지, 앞 문장과 어떻게 이어지는지를 아는 일입니다. 이것이 진짜 읽기입니다.
읽기 연구에서는 이 둘을 곱셈으로 설명합니다. 읽기 = 글자 읽기 × 글 읽기. 곱셈이기 때문에 한쪽이 0에 가까우면 결과도 0에 가까워집니다. 글자를 아무리 정확하게 읽어도 뜻을 잡는 힘이 약하면, 읽기는 이루어지지 않은 것입니다.
많은 아이가 ①만 배우고 ②는 배우지 못합니다
우리는 아이에게 글자 읽는 법은 열심히 가르칩니다. 한글 교재, 낱말 카드, 받아쓰기가 모두 그 훈련입니다. 그런데 글의 뜻을 읽는 법은 따로 가르치지 않습니다. 글자를 읽을 줄 알면 뜻은 저절로 알게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뜻을 읽는 것은 저절로 되지 않습니다. 글에는 말투도, 표정도, 손짓도 없습니다. 문장과 문장 사이의 연결을 스스로 찾아야 하고, 모르는 낱말이 나와도 앞뒤로 뜻을 짐작해야 합니다. 이런 일은 배워야 할 수 있습니다.
글자는 술술 읽는데 내용은 모르는 아이는 머리가 나쁜 아이가 아닙니다. 글의 의미를 읽는 법을 아직 배운 적이 없는 아이입니다. 이 차이를 알면 부모의 말이 달라집니다. “왜 읽고도 몰라?”가 아니라 “아직 안 배운 거구나”가 됩니다.
집에서 확인하는 신호 네 가지
검사지가 필요하지 않습니다. 아이가 좋아하는 동화책 한 권이면 됩니다. 한 쪽을 읽게 한 뒤 아래를 살펴보세요.
| 신호 | 글을 읽는 아이 | 글자만 읽는 아이 |
|---|---|---|
| 읽은 뒤 한 줄로 말하기 | 서툴러도 “토끼가 집에 못 가서 울었어”처럼 말한다 | 책 문장을 그대로 외워 말하거나 “몰라”라고 한다 |
| 읽는 속도 | 재미있는 곳에서 빨라지고 어려운 곳에서 느려진다 | 쉬운 문장이나 어려운 문장이나 속도가 같다 |
| 모르는 낱말 | 멈추거나 “이게 뭐야?”라고 묻는다 | 똑같이 소리 내어 읽고 그냥 넘어간다 |
| 문제 풀 때 | “어디서 봤더라” 하며 지문으로 돌아간다 | 지문을 다시 보지 않고 바로 답을 고른다 |
오른쪽 칸의 모습이 두 가지 이상 자주 보인다면, 아이는 아직 글자 읽기 단계에 머물러 있을 가능성이 큽니다.
오늘 바로 해볼 수 있는 것
확인이 되었다면 거창한 교재보다 작은 습관이 먼저입니다. 하루 10분이면 충분합니다.
1. 한 쪽 읽고 한 문장 말하기
한 쪽마다 멈추고 “무슨 이야기였어?”라고 묻습니다. 아이가 책 문장을 그대로 말하면 “네 말로 해볼까?”라고 한 번 더 묻습니다. 처음에는 부모가 먼저 본보기를 보여주어도 좋습니다.
2. 모르는 말에 멈추기
뜻을 모를 것 같은 낱말이 나오면 “이거 무슨 뜻일까?”라고 묻습니다. 정답을 바로 말해주지 않고, 앞뒤 문장을 다시 읽으며 함께 짐작해 봅니다. 뜻이 비어 있으면 불편하다는 감각을 길러주는 것입니다.
3. “왜?”를 한 번 묻기
“토끼는 왜 울었을까?”처럼 이유를 묻는 질문을 하나만 합니다. 이유를 말하려면 문장과 문장을 이어야 하므로, 글의 뜻을 읽는 연습이 됩니다.
한 가지 주의: 아이가 틀려도 고쳐주지 마세요. 지금 기르려는 것은 정답이 아니라, 글을 읽으면 뜻을 생각한다는 습관입니다.
정리
- 한글을 뗐다 = 글자를 소리로 바꾸는 법을 배웠다. 글의 뜻을 읽는 법은 아직이다.
- 읽고도 이해 못 하는 아이는 두 번째 단계를 배운 적이 없을 뿐이다.
- 동화책 한 권으로 신호를 확인하고, 하루 10분 “한 쪽 읽고 한 문장 말하기”부터 시작하자.
출처
- Gough, P. B., & Tunmer, W. E. (1986). Decoding, reading, and reading disability. Remedial and Special Education, 7(1), 6–10. (읽기 = 해독 × 언어 이해, ‘단순 읽기 모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