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는 책을 정말 좋아해요. 일주일에 열 권은 읽어요. 그런데 국어 문제만 풀면 틀려요. 이해가 안 돼요.”
학부모 상담에서 이런 말을 들으면 저는 오히려 안심합니다. 이 아이는 읽기를 싫어하는 아이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고치기가 훨씬 쉽습니다. 다만 한 가지를 바로잡아야 합니다. 많이 읽는 것과 이해하며 읽는 것은 다른 능력이라는 점입니다.
이 글은 많이 읽는 아이가 왜 문제 앞에서 막히는지, 그리고 독서량을 줄이지 않고도 결과를 바꾸는 방법을 설명합니다.
이 글의 핵심
- 책을 많이 읽는 것은 읽기 습관이고, 읽고 이해하는 것은 읽기 능력입니다. 둘은 같이 자라지 않을 수 있습니다.
- 많이 읽는데 이해 못 하는 아이는 대개 글자를 빠르게 훑는 방식으로 읽고 있습니다.
- 권수를 줄일 필요는 없습니다. 읽는 방식만 바꾸면 됩니다.
많이 읽는다고 잘 읽는 것은 아닙니다
“책을 많이 읽으면 저절로 똑똑해진다”는 말은 반만 맞습니다. 글을 이해하며 많이 읽으면 그렇습니다. 그러나 글자만 빠르게 훑으며 많이 읽으면, 읽은 권수만 늘고 머리에 남는 것은 적습니다.
① 읽기 습관
책을 자주, 오래, 즐겁게 손에 드는 것. 이것은 태도이고 습관입니다. 많이 읽는 아이는 이것이 잘 되어 있습니다.
② 읽기 능력
읽은 글의 뜻을 잡고, 중요한 것을 골라내고, 앞뒤를 잇는 것. 이것은 기술이고 배워야 합니다.
앞 글에서 말씀드린 것처럼, 읽기는 “글자 읽기 × 글 읽기”입니다. 책을 많이 읽는 아이는 글자 읽기가 아주 빠릅니다. 그런데 빠른 글자 읽기가 오히려 글 읽기를 건너뛰게 만들기도 합니다. 눈이 뜻보다 먼저 달려가는 것입니다.
많이 읽는 아이가 빠지는 함정 세 가지
많이 읽는 아이들에게서 공통으로 보이는 읽기 방식이 있습니다. 아이가 아래 중 어디에 해당하는지 살펴보세요.
| 함정 | 이런 모습이 보입니다 | 왜 문제가 되나 |
|---|---|---|
| 줄거리만 따라간다 | 이야기책은 좋아하는데, 설명문이나 교과서는 금방 지루해한다. | “다음에 무슨 일이 일어나나”만 쫓는 읽기는 사건이 없는 글에서 멈춥니다. |
| 아는 부분만 읽는다 | 모르는 낱말이 나와도 멈추지 않는다. 물어보면 “그냥 넘어갔어”라고 한다. | 빈 곳을 채우지 않고 넘어가니, 글의 핵심이 그 낱말에 있으면 통째로 놓칩니다. |
| 읽은 뒤에 남는 게 없다 | “재미있었어”는 말하는데 “무슨 내용이었어?”에는 답이 짧다. | 읽는 동안 뜻을 정리하지 않으니, 문제에서 그 내용을 물으면 꺼낼 것이 없습니다. |
이 세 가지는 아이의 잘못이 아닙니다. 아무도 “이해하며 읽는 법”을 가르쳐 준 적이 없는데 읽기를 좋아하다 보니 빠르게 훑는 방식이 몸에 밴 것입니다. 그래서 고치는 것도 어렵지 않습니다. 방식 하나만 끼워 넣으면 됩니다.
권수를 줄이지 말고, 한 권을 다르게 읽게 하세요
책을 좋아하는 아이에게 “그만 읽고 문제집 풀어”라고 하는 것은 가장 나쁜 선택입니다. 읽기 습관이라는 큰 자산을 버리는 것입니다. 대신 지금 읽는 책 중 한 권만 다른 방식으로 읽게 합니다. 나머지는 지금처럼 마음껏 읽어도 됩니다.
오늘 바로 해볼 수 있는 것
1. 일주일에 한 권만 “느리게 읽는 책”으로 정한다
아이가 고른 책 중 하나를 “느리게 읽는 책”으로 정합니다. 이 책은 하루 한 장(챕터)만 읽습니다. 나머지 책은 지금처럼 자유롭게 읽습니다.
2. 한 장 읽고 세 가지를 말하게 한다
느리게 읽는 책은 한 장을 읽은 뒤 “무슨 일이 있었어?”, “왜 그랬을까?”, “모르는 말 있었어?” 세 가지만 묻습니다. 답이 짧아도 괜찮습니다. 답을 고쳐 주지 말고, “그렇구나”라고만 하세요.
3. 설명문 한 편을 끼워 넣는다
2주에 한 번은 이야기책 대신 짧은 설명문(어린이 과학 잡지, 어린이 신문 기사)을 느리게 읽는 책으로 정합니다. 줄거리가 없는 글에서 “이 글이 하고 싶은 말이 뭐야?”를 한 문장으로 말하게 합니다.
한 가지 주의: 느리게 읽는 책이 숙제처럼 느껴지면 아이는 책 자체를 멀리합니다. 질문은 세 개를 넘기지 말고, 5분 안에 끝내세요. 즐거운 읽기는 그대로 두고, 작은 방 하나만 새로 만든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정리
- 많이 읽는 것은 습관이고, 이해하며 읽는 것은 능력이다. 둘은 따로 자랄 수 있다.
- 많이 읽는데 이해 못 하는 아이는 글자를 빠르게 훑는 방식이 몸에 밴 것이다.
- 권수를 줄이지 말고, 일주일에 한 권만 느리게 읽으며 세 가지를 말하게 하자.